중동에서 짙어지는 전운戰雲
이란 방문한 하마스 지도자 암살
이란 방문했던 하니예 숙소에서 암살당해
헤즈볼라 최고 지휘관 제거 후 몇 시간 만에 하마스 지도자도 공격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 후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
2024년 7월 31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Hamas와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하마스의 젊은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가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숙소에서 급습당해 경호원과 함께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앞서 7월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해 헤즈볼라 최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Fuad Shukr를 제거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테헤란을 공격해 하니예를 암살한 것이다.
하니예는 하마스 정치국을 이끌며 가자 전쟁 휴전 협상을 주도해 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사망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협상이 파탄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의 입장에서 하니예 암살은 자국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된 ‘저항의 축’ 지도자가 암살된 치욕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제5차 중동전쟁 확전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하마스와 이란은 하니예의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보복을 천명했다. 앞서 2024년 4월에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이스라엘이 폭격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를 타격했고 이에 이스라엘이 맞대응하면서 중동전쟁 위기가 고조된 바 있다.
하마스 지도자 하니예가 걸어온 길
이스마일 하니예, 그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자 지구 난민촌에서 1962년 태어났다. 가자 이슬람 대학에서 이슬람문학을 전공하고 1987년 졸업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무슬림형제단’과 이를 이끄는 아흐메드 야신Ahmed Yassin을 만났다. 1987년 이스라엘의 압제에 항거하는 대대적인 봉기, 즉 제1차 인티파다Intifada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야신은 무력 투쟁을 천명하며 하마스를 설립했다. 그는 이런 야신을 도우며 두 차례 투옥됐다. 1993년 추방지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이슬람 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1997년 하마스 창설자 야신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9월부터 시작된 2차 인티파타 기간 동안 야신을 보좌하여 하마스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하마스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부상하였다. 2003년 9월 이스라엘 공군이 가자 지구를 방문한 야신을 암살하기 위하여 폭탄을 떨어뜨렸을 때 야신을 수행하여 함께 있었지만 상처 없이 피할 수 있었다. 2004년 3월 22일과 4월 17일 아흐메드 야신과 아지즈 란티시Aziz Rantissi가 이스라엘에 잇따라 표적 암살된 뒤, 마흐무드 알자하르Mahmoud al-Zahar 등과 함께 하마스를 이끌어 왔다.
특히 2006년 1월 실시된 팔레스타인 지방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하마스는 132석 중 74석을 석권하며 온건파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파타Fatah당에 압승을 거뒀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하니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가 됐다. 강경파인 하니예는 테러 시도를 포기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거부했고, 온건파와도 대립했다. 이에 하니예는 자치정부 내각에서 이탈했고, 팔레스타인은 2007년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 지구(Gaza Strip)와 파타당이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로 완전히 쪼개졌다.
그는 2023년 10월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의 가자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제거 1순위가 됐다. 하니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따돌리기 위해 카타르와 튀르키예 등의 고급 호텔 등을 오가며 지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3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올해 들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세 명의 아들과 손주, 형제자매 등 10명을 잃었다고 한다.
확전의 기로에 놓인 ‘두 개의 전쟁’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이 확전 기로에 놓였다. 개전 900일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침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최근에 남쪽 지역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북쪽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격돌하는 양면 전쟁으로 확대됐다. 특히 이스라엘이 8월 25일 양쪽을 모두 공격하면서 중동의 긴장이 한껏 고조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교전이 전면전으로 커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이란의 공격이 변수라고 지적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며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이란은 이미 지난 4월에 직접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하니예 암살 후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은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의심의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다.